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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2014년 11월: 인도네시아의 욕야카르타 여행기

여행은 저에게 있어 큰 활력소가 되어주는 취미입니다. 어릴 적 미국에 있으면서 가족들과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덕분에 새로운 곳으로 모험하기를 좋아합니다. 영어에도 자신이 있어 대학교 2학년 때는 교환학생을 신청하여 싱가포르로 갔습니다. 싱가포르 학교의 학기는 한국의 학기에 비해 한 달씩 늦습니다. 즉, 학기 도중에 크리스마스와 신년이 끼어있어 2주일 동안의 휴일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싱가포르 주변에 있는 동남아 국가를 여행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그 중에는 인도네시아가 있었으나 다른 동남아 국가와 동떨어져 있습니다. 여행 도중에 인도네시아로 가고 돌아오는 게 매우 불편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여행을 포기할까 고민하는 중, 마침 금요일에는 수업이 없고 월요일에는 오후 수업만 있는 것을 깨달고 인도네시아의 욕야카르타라는 도시만을 콕 집어 3박4일 나홀로 배낭여행을 가기로 합니다.
인도네시아 여행은 저에게 있어 첫 나홀로 자유여행(Free Independent Travel; FIT)입니다. 즉, 여행사나 업체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계획을 잡아 자유롭게 떠나는 여행입니다. 특히 짧은 여행기간이란 점을 감안하여 편리하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배낭 하나만을 매고 여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여행 계획을 세우는데 처음에는 수많은 고민과 걱정에 시달렸습니다: 어느 도시로 가야 효율적인가, 어느 항공사를 선택할 것인지, 어디 숙소를 잡을 것인지 등의 생각에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보내며 계획을 세웠습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국가이며, 나흘이란 시간내에 큰 섬만 둘러보는 것도 매우 벅찹니다. 어쩔 수 없이 한 지역만을 선택하여 가야하는데 어느 지역으로 갈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정 기준을 정했는데, 그 지표가 바로 UNESCO 세계유산입니다. 그 외에도 이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반응 및 이동의 편리성을 고려하여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Jakarta)와 사라왁(Sarawak)주를 포기하고 욕야카르타(Yogyakarta)로 결정하였습니다.

2014년 11월 28일, 금요일

세계 최고의 공항으로 선정된 싱가포르의 창이공항에서 에어아시아 오전 비행기를 탑승하였고, 대략 1시간 30분의 비행을 마치고 인도네시아의 욕야카르타 아디수십토 국제공항(IATA: JOG)에 도착했습니다. 이름은 비록 국제공항이라 하지만 인천국제공항처럼 넓고 쾌적한게 아닙니다. 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활주로와 입국심사 자격만 주어지면 국제공항이란 타이틀을 사용할 수 있으며, 공항 이용객들에게 제공되는 시설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이때만 해도 제가 다녀본 공항이라고 하면 이렇게 여섯 개가 전부였습니다:
  • 대구국제공항(TAE)
  • 인천국제공항(ICN)
  • 창이국제공항(SIN)
  • 나리타국제공항(NRT)
  • 로스엔젤레스국제공항(LAX)
  • 솔트레이크시티국제공항(SLC)
이 중에서 대구국제공항은 이용객들이 거의 없어 시설도 부실한 면이 있었으나, 아디수십토 국제공항와 비교하자면 훨씬 더 세련됐습니다. 욕야카르타의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탑승계단을 걸어내리면 낮고 오래되어 보이는 1층 건물이 전부였습니다. 건물 내부에는 입국심사대와 도착비자(Visa on Arrival)를 지급하는 곳이 있었고, 이들을 통과하면 면세점 하나 없이 바로 공항 밖으로 나갑니다. 국제공항이라는 기대감이 너무 컸는지, 저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그림 1. 욕야카르타의 아디수십토 국제공항에서 바라보는 비 내리는 장면.

도착했을 때에는 날씨가 많이 흐린 상태라서 혹시 비가 오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결국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우산을 챙기긴 하였지만, 비는 소나기가 오는 듯이 거세었습니다. 현재로는 환전을 하지 않았고 현금도 없는 상태여서 인도네시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돈이 당장 없었습니다. 현금인출을 위해 ATM을 찾아야 하는데, 저는 여행객들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관광안내소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영어회화가 가능하여 ATM이 어딨는지 영어로 물었지만, 문제는 안내원들이 영어를 하지 못했습니다. 여행객을 도와줄 수 있는 안내원들이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못한다는게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영어가 가능한 안내원의 도움으로 ATM을 찾아 인도네시아 현금을 넉넉히 출금했습니다.
욕야카르타의 첫 번째 목적지는 보로부두르(Borobudur) 불교 사원입니다. 보로부두르는 욕야카르타 시내에서 자동차로 1시간 이상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사원이지만, 사원 바로 옆에는 호텔이 있어 새벽 4시에 사원 꼭대기에 올라가 일출을 볼 수 있는 새벽 입장권도 함께 판매합니다. 호텔 예약을 싱가포르에서 이미 마친 저는 보로부두르로 가려고 하지만,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분명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하였지만, 어디서 몇 번 버스를 타야하는지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공항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가 없었으며, 데이터 전용 유심칩에 대한 존재도 몰랐던 때입니다. 물론 관광안내소로 돌아가 물어볼 수 있었지만, 당황한 나머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고 멍하니 비오는 밖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심하기 내리는 소나기에 밖으로 나가 버스 정류장이 어디에 있는지도 확인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멍하게 30분 정도 서 있던 저에게 한 택시 기사가 다가오면서 어디를 가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보로부두르로 가는 버스가 있는지 되물었습니다. 택시 기사는 당연히 버스가 없다고 말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말을 믿은 제가 매우 순진하였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면 아시겠지만, 오른쪽에 노란색 기둥으로 된 칸막이가 바로 버스 정류장입니다. 바로 옆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도 택시 기사는 버스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여 호객행위를 한겁니다. 저는 약간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지만, 순수히 그의 택시를 타고 보로부두르로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림 2. 택시 기사가 데려온 식당의 내부 모습.

욕야카르타 시내를 벗어나도 비는 여전히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호텔로 갔으면 좋겠지만, 택시 기사는 저에게 배고프지 않은지 물어보며 인도네시아 음식을 소개해주겠다는 핑계로 어느 한 건물에 차를 세웁니다. 그곳에서 택시 기사는 저를 식당으로 안내했고, 저는 그곳에서 아무런 의심없이 점심을 먹었습니다. 사실 의심을 하지 않게 된 이유가 음식 가격이 제가 충분히 지불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 현지인들 기준에서 비싼 가격인지 모르겠지만, 환율을 계산할 때에는 적당하다고 판단하여 마음 놓고 식사를 즐겼습니다. 식사를 끝내니 이제는 택시 기사가 욕야카르타는 은 공예가 유명하다면서 다른 건물로 안내했습니다. 안에는 은으로 만든 악세사리와 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택시 기사는 제가 무언가 하나를 사기를 원하였겠지만, 저는 금이나 은 장신구나 악세사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왜 저를 이곳으로 데려왔는지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인도네시아 여행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그의 의도를 파악하게 되었죠. 저는 택시 기사에게 다시 호텔로 가자고 당부하여 다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림 3. 마노하라 호텔(상), 그리고 호텔에서 바라본 보로부두르 사원 모습(하).

보로부두르 사원 바로 옆에 위치한 마노하라 호텔(Manohara Hotel)에 도착하니 비가 그쳤습니다. 친구에게 보낸 메시지에 한화 3만원 정도 지불했다고 기록을 했네요. 택시 기사는 내일 다시 저를 데리러 오겠다고 말했고, 저는 이를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택시를 보내고 난 이후, 호텔 프론트에 가서 예약 증명서를 보여주어 방 열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격이 비싸지만 가치가 있을거란 생각으로 새벽 입장권도 같이 구매했습니다. 해는 졌지만 아직 햇빛이 남아있어 아름답게 조성된 호텔 내부를 둘러보고 싶었습니다. 밖에는 보로부두르가 바로 보였고, 저는 사원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울타리 쪽을 향해 가까이 걸었습니다. 그러자 울타리 넘어서 한 남성이 저를 보고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라는 생각에 저는 아무런 의심없이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남성이 저에게 보여준 것은 작은 보로부두르 사원 모형의 장식품이었습니다. 저는 여행을 갈 때 기념품을 사지 않으며, 사고 싶지도 않습니다. 책갈피나 공책처럼 활용성이 있는 물건이라면 고려해 볼 수 있으나, 아무런 활용도 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장식품은 절대 안삽니다. 그 대신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라서 여행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고 싶을 때 컴퓨터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감상합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기념품을 사고 싶지 않다고 말하였지만 언제부터 우리가 그렇게 친했는지 남성은 저를 친구라고 부르면서 집요하게 기념품을 사라고 합니다. 조금씩 그의 행동이 성가시기 시작한 저는 그냥 그의 말을 무시하고 제 방으로 들어갑니다. 제 방으로 걸어가면서도 남성이 저를 부르는 소리는 계속 들려왔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개인여행이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 깨달았습니다.

2014년 11월 29일, 토요일

그림 4. 보로부두르 불교 사원 꼭대기에서 바라본 일출 전 모습.

새벽 4시가 되기 전, 프론트에서 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곧 보로부두르 사원으로 올라갈 것이니 준비하라는 전화였습니다. 저는 비시시한 상태로 침대에 일어나 외출 준비를 마치고 프론트로 걸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저와 같이 보로부두르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밖은 아직 어두컴컴하였고 직원 한 분이 손전등으로 길을 밝혔습니다. 저희는 그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아직 어두워서 올라가는 길이 어떠하였는지 구별되지 않았지만, 계단을 오르는 순간부터 보로부두르 사원 안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상당한 수의 계단을 오를수록 하늘은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으나 아직 해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사원 꼭대기에 도착한 저희는 올라온 길을 바라보니 구름이 많아 일출을 제대로 볼 수 있는지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일출이 없어도 새벽의 찬 공기가 안개가 되면서 만들어 낸 관경은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숲들로 둘러싸인 사원에서 비 온 뒤의 공기는 매우 맑고 시원했습니다. 모두들 사원 꼭대기에서 각자 자리를 잡아 앉은 채 일출이 뜨기를 기다리는 동시,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다행이 시간이 지날수록 구름이 개기 시작하였고, 드디어 일출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림 5. 보로부두르 불교 사원의 일출.

일출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일출을 보고 있는 내내 제 입가에는 미소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으로 봐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직접 보면 얼마나 더 아름다운지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특히 제 아버지도 저처럼 자연과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아, 아버지에게 꼭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심지어 다른 한국인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블로그를 시작한 또다른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보로부두르 사원을 둘러보기로 합니다. 좌불상이 여기저기 보이는게 확실히 이곳이 불교 사원임을 알려주었습니다. 벽에는 불교와 관련된 벽화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천천히 이를 감상하면서 꼭대기에서 한 층씩 내려갔습니다.
그림 6. 보로부두르 불교 사원의 정면.

그렇게 느긋하게 감상하면서 내려오니 하늘은 중천에 있었고, 현장학습을 온 학생들이 여기저기 오는게 보였습니다. 충분히 만족할 만큼 구경을 다 하여, 저를 기다리고 있을 택시를 잡으러 갔습니다. 그러나 가는 도중, 어제 울타리에서 만난 장식품 파는 남성이 저를 알아보고 다시 한 번 다가와 물건을 팔려고 시도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짜증이 확 나기 시작하여 간결하고 단호하게 싫다고 말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보로부두르 불교 사원을 떠났습니다.
그림 7. 비아비아 욕야카르타 게스트하우스 입구.

기다리고 있는 택시를 탑승하여 욕야카르타 시내에 있는 비아비아 욕야카르타 게스트하우스(Viavia Jogjakarta Guesthouse)로 향했습니다. 처음으로 혼자서 여행을 하니,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로망을 직접 체험하고 싶었습니다. 다른 여행객들과 잡담을 나누면서 집처럼 편안한 게스트하우스를 기대하며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택시 기사는 내일 다시 와서 시내 투어에 도와주겠다는 기약을 하고 떠났습니다.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골목을 들어가 체크인을 하였습니다. 여행객들의 편의를 위해 일부에서는 호스트 혹은 직원이 자체적으로 만든 관광 지도/약도를 보여주며 구경할 곳들을 친절히 설명합니다. 호스트가 지역 설명을 마치고 방 열쇠를 건네받은 저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다른 여행객들이 방 안에 있을거란 기대를 품고 문을 열고 들어갔으나, 안에는 침대 하나와 탁자 하나, 그리고 의자 두 개가 있는 자그만한 개인방이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예약을 할 때 침대 하나로 예약한 게 바로 개인 침실은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다른 여행객과 한 방에서 이층 침대에서 자는 것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돔(dorm), 직역하면 기숙사 형식의 방을 예약해야 합니다. 아직 학기 중인 관계로 의자에 앉아 잠시 주어진 자투리 시간으로 학교 과제를 진행하였습니다.
잠시동안만 하겠다는 과제는 저녁 때까지 진행되었고 배가 고파지기 시작하여 밖으로 나갔습니다. 막상 밖으로 나갔지만 주변에는 저녁을 먹을 곳이 마땅히 있지 않아 난처하였습니다. 혹시나 괜찮은 식당이라도 있을까 길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사이드카가 있는 오토바이 한 대가 다가왔습니다. 저녁을 먹을 곳을 찾으러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남성은 자신이 잘 아는 식당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낯선 사람이 갑작스레 나타나 식당을 소개하니 뭔가 의심스럽지만, 그 당시에는 인도네시아 문화를 몸소 체험해보자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 사이드카에 탑승했습니다. 그렇지만 긍정적인 마인드도 잠시, 도대체 어디로 가는건지 모르기에 조금씩 불안감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저는 남성에게 어디로 가는건지 알려달라고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영 시원찮지 않았고, 게스트하우스에서 계속 멀어지면서 더욱 불안해진 저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며 당장 어디가는건지 말하라고 집요하게 물었습니다. 오토바이가 도착한 곳은 규모가 좀 큰 식당이었고, 심지어 외국인들이 꽤나 있는게 보였습니다. 식당으로 데려다준 남성은 식당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며 저녁을 먹고 오라고 했습니다. 일단 허기진 저는 식당으로 향해 들어갔지만, 여전히 이 식당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오토바이 남성에 대한 불신은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그림 8. 식당에서 펼쳐진 인도네시아 전통 춤 공연.

식당 정문에는 카운터가 있었습니다. 카운터 직원은 이곳 식당은 선불식 뷔페인데다가 안에는 공연장이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직원은 저에게 식사만 할건지 아니면 공연도 같이 볼건지를 물었습니다. (정확히 얼만큼인지 모르겠지만) 상대적으로 비싼 비용과 아직 풀리지 않은 불안과 의심은 이 식당에서 저녁을 먹을지 망설이게 하였으나, 인도네시아 현지 문화를 체험하고 싶은 로망이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있어 과감하게 식사와 공연 비용을 지불하였습니다. 식당에 들어간 저는 직원이 빈 4인용 테이블로 안내하였고 공연 시작 시간도 함께 알려주었습니다. 자리를 배정받은 즉시 음식을 접시에 담아 자리에 돌아와 먹는데, 도중에 음악이 시작되면서 식당 내에서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몹시 당황스러웠습니다: "카운터에서 말한 공연이 저걸 말한 것인가?" 모두가 뻔히 볼 수 있는 장소에서 공연을 하다니, 그럼 공연비를 낼 필요가 없는거 아니냐며 손해를 본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걱정도 잠시, 직원이 알려준 공연시간이 한참도 되지 않은 것을 보니 식당 공연은 별개의 공연임을 짐작할 수 있어 다시 편안히 식사를 즐겼습니다.
그림 9. 무대에서 진행된 인도네시아 전통 공연.

공연 시간이 되자 직원은 저와 다른 공연 관람객들을 부르며 식당의 다른 건물로 안내했습니다. 안에는 무대가 준비되어 있었고, 저희는 의자에 앉아 공연을 기다렸습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직원이 무대 옆에서 개략적인 공연의 줄거리를 설명하였습니다. 공연은 인도네시아 언어로 진행되었으나 미리 설명한 줄거리 덕분에 공연의 전개와 연기자들의 제스처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공연이 끝났을 때 개인적으로 흥미진진하였고 만족스러웠습니다.
저녁도 해결하고 공연도 즐긴 저는 식당을 나왔고 기다리고 있던 오토바이 남성을 만났습니다. 공연이 만족스러운 덕분에 이런 곳을 소개해준 운전수에게 고마웠고, 오히려 그에게 목소리 높여 말한게 미안해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갈 줄 알았지만, 남성은 저를 데리고 기념품 가계로 갔습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저는 그냥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오토바이 남성도 집요하긴 하였지만 저는 최대한 피곤한 척 연기를 하여 결국 남성은 저를 만났던 곳으로 저를 내려줬습니다. 물론 결론적으로 그가 원한 것은 돈입니다; 저를 내리고 나서는 교통비로 돈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만족스러운 공연 때문에 아무런 불평없이 돈을 주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갔습니다(어차피 가격이 비싸지도 않았습니다).

2014년 11월 30일, 일요일

그림 10. 비아비아 욕야카르타 게스트하우스의 뒷마당.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을 준다는 말에 저는 일어나서 한 번 식탁이 있는 뒷마당으로 나가보았습니다. 호스트는 아침으로 "바나나 팬케익"을 요리하여 저에게 건네줬습니다. 여기서 바나나 팬케익은 구글 이미지에 나오는 팬케익에 바나나가 올려져 있거나, 아니면 팬케익 반죽에 바나나가 들어있는 그런게 아닙니다. 말은 팬케익이지만 오히려 "바나나 로띠"로 알려진 이 음식은 동그란 또띠아에 겹에는 구운 바나나가 들어있는 음식입니다. 바나나 로띠의 다른 이름은 "태국식 바나나 팬케익"이라고 불러서 저한테 팬케익이라고 소개한 거 같네요. 그런데 바나나 로띠는 정말로 맛있었습니다. 이전에도 바나나를 자주 먹었지만 이렇게 맛있게 먹은 적이 없었고, 이때부터 구운 바나나에 대한 애착이 커졌습니다. 아쉽게도 음식을 찍은 사진은 없지만, 구글에 검색하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시내에 있는 볼거리들을 둘러보기로 계획이었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 나가기 전에 호스트는 저에게 오늘 여행 계획이 어떤지 물었고, 이동경로 및 교통수단에 등을 알려주며 저의 시내 투어 계획에 도와주었습니다. 호스트는 버스를 권장하였고, 오토바이 또한 택시에 비해 값이 싸므로 나쁘지 않다고 알려주었습니다. 특히 제가 자주 이용하게 되어버린 택시가 뭔가 탐탁지 않았는지 저에게 공항으로 가는 택시는 자신들이 직접 잡아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그 택시 기사의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던 거 같습니다. 호스트는 오늘 오기로 한 택시를 돌려보낼지 저에게 물었지만 마음이 약한 저는 오늘은 오기로 했으니 택시를 오늘까지만 타겠다고 하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택시는 저를 내려준 곳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순간부터 저는 택시 기사와 거리를 두었습니다.
그림 11. 크라톤 왕궁의 모습(상), 그리고 왕궁 내의 공연 장면(하).

첫 목적지는 욕야카르타의 크라톤 왕궁(Keraton Ngayogyakarta Hadiningrat)으로 정하였습니다. 왕궁이란 타이틀로 유럽풍의 으리으리하고 화려한 건물들을 기대하였지만, 건물들은 화려하였으나 으리으리하지는 않았습니다. 동남아시아가 덥고 습한 기후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통풍이 잘 되도록 왕궁의 건물들은 낮고 사방이 개방되어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벽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기둥과 지붕에 황금빛 장식으로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습니다. 저는 천천히 걸어다니면서 이리저리 꼼꼼히 둘러보았습니다. 비가 온 뒤라서 공기는 습하고 구름도 끼었지만 저에게는 좋은 산책로 같았습니다. 돌아다니다 보면 공연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한 곳에는 전통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고, 다른 한 건물에서는 전통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음악이나 무용에 대한 지식이 얕은 저는 그냥 멍하니 30분 동안 공연을 보고 있었습니다.
크라톤 왕궁에 나갈 때에는 다른 쪽을 통해 나갔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택시 기사와 만나지 않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는 나가려는 출구가 들어왔던 입구로 다시 돌아가는 길보다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다음 목적지는 크라톤 왕궁과 매우 가까이 위치하여 걸어가려 하는데 한 남성이 다가와 커피를 좋아하는지 물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전 커피라고 마시는 것은 카라멜 마끼야또밖에 없습니다. 그는 저에게 루왁을 보여주겠다면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루왁 커피가 뭐가 특별하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로만 들었던 그 동물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에 저는 그를 따라갔습니다. 한 골목으로 저를 데려온 남성은 자신이 키우는 루왁을 보여줬습니다. 예전에는 루왁 고양이라고 많이 칭하여 길고양이처럼 생겼을 거라 생각하였지만, 오히려 그 생김새는 레서판다를 연상케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루왁을 보았을 때 호기심보다 오히려 안쓰러움이 느꼈습니다. 루왁은 케이지 안에 한 쪽 구석에 움크려 누워 있는게 지친 것인지 아니면 야행성 동물이라 단순히 피곤해서 누운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당시에는 전자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감정 때문인지 그가 저에게 소개한 루왁 커피나 다른 상품들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바로 이 자리를 떠나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가방에 더이상 짐을 넣을 공간이 없다고 핑계를 둘러대며 얼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림 12. 케이지 내 구석에 움크려있는 루왁.

골목에서 나와 게스트하우스에서 받은 약도를 보며 다음 목적지인 물의 궁전 타만사리(Tamansari Water Castle)에 도착하였습니다. 도보로 10분도 걸리지 않은 거리인 만큼 크라톤 왕궁의 다음 목적지로 안성맞춤입니다.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구매하고 입구에서 입장료를 보여주어 들어가려고 하였습니다. 이때 입구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입장료에 궁전 내부 가이드가 포함되었다고 한건지, 아니면 어느 한 남성이 무작정 저한테 와서 가이드를 해 주겠다고 한건지 모르겠지만 제 옆에는 현지인 남성이 따라다니며 타만사리 궁전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습니다. 물의 궁전은 옛날 인도네시아 왕이 여자들과 함께 유흥을 즐기기 위한 수영장이라고 하였으며, 심지어 탈의실도 있는 것을 가이드가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가이드의 궁전 설명은 참 흥미로웠습니다. 그렇지만 가이드는 은근히 거슬리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궁전을 천천히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가이드는 이곳은 볼게 없다면서 계속 가자는 듯 재촉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림 13. 물의 궁전 타만사리의 내부 모습.

물의 궁전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정말 수영장만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줄 알았으나, 짧게 끝난 물의 궁전은 저를 잠시 방황하게 만들었습니다. 타만사리 궁전에 나와서는 욕야카르타에 있는 성벽을 걸어다니며 구경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걸어다니는 것도 지쳐 오토바이를 잡아 오후 4시를 넘어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갔습니다.
게스트하우스 호스트는 돌아온 저를 맞이하여고 오늘 일과는 어떻는지 물었습니다. 일과는 만족스럽다고 하였지만, 사실 저에게는 눈여겨 본 한 장소가 있었습니다. 바로 욕야카르타에 있는 힌두교의 프람바난(Prambanan) 사원입니다. 이에 대하여 알려주자 호스트는 내일 아침 일찍 싱가포르로 돌아가는 저에게 프람바난 사원을 보고 가라고 당요했습니다. 비록 폐관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으나 빨리 가면 볼 수 있을거라고 호스트는 알려주었습니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쉬고 싶은 저는 나가기가 싫었지만, 결국 다시 안 올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밖으로 다시 나가 오토바이를 잡고 출발했습니다.
폐관까지 한 시간도 남지 않은 상황에 오토바이는 어느 한 울타리 옆에 멈춰 세웠습니다. 그는 울타리 넘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에 프람바난 사원이 있다고 말하며 내리라는 겁니다. 입구까지 데려다 줄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돈을 내고 오토바이에서 내렸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프람바난 사원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이지 않았고, 오토바이는 이미 멀리 떠나버려 몹시 당황스러웠습니다. 날은 저물고 있지만 인도네시아를 떠나기 전에 프람브난 사원은 꼭 보고 싶었기 때문에 폐관 시간 걱정이 심각해 졌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무작정 입구가 있을 만한 곳인 앞으로 뛰어갔습니다. 아마 10분 정도 달렸을까, 폐관까지 30분의 시간을 남기고 프람바난 사원 입구에 도착하였습니다. 다행이 사원 내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림 14. 해질녘 프람바난 사원의 모습.

촉박한 시간에 프람바난 사원은 다른 장소들에 비해 꼼꼼히 둘러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곳으로 여겼습니다. 불교 사원인 보로부두르와 달리, 프람바난은 힌두 사원입니다: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두 종교의 사원이 하나의 욕야카르타에 존재한다는 점이 우선 저를 마냥 신기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힌두교는 한국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종교이므로, 힌두교라는 그 자체가 저의 관심을 끄는데 충분하였습니다. 높고 뾰족한 힌두교 사원은 확실히 보로부드르 불교 사원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생김새입니다. 이는 나중에 2014년 동남아 여행기에서 언급할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사원 중 하나인 앙코르 와트에서도 동일한 힌두교 사원의 특징이 관찰될 수 있습니다. 비록 폐관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으나 프람바난 사원에는 사람들은 여전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에 저는 오히려 시간에 쫓기는 심리적 불안에서 벗어나 마음놓고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폐관 시간이 되어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야 합니다. 문제는 근처에 택시나 오토바이가 보이지가 않은 겁니다. 분명 다른 곳에는 택시나 오토바이가 손님을 태우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을 거지만, 제 생각에는 출구를 잘못 찾아 나간 바람에 택시와 오토바이를 잡지 못한거 같습니다. 해는 떨어지고 주변이 어두워지니 슬슬 돌아가는 길이 걱정되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오토바이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가기 시작했습니다. 가는 길에 택시라도 보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계속 도로쪽을 바라보았지만, 택시가 지나간다 하더라도 이미 승객을 태우고 있었고, 오토바이는 자가용인지 택시용인지 구별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택시를 잡지 못하면 게스트하우스까지 걸어갈 생각도 했습니다. 걸어가는 도중 버스 정거장을 발견하게 됩니다. 걸어가는 것보다 낫겠다 싶어 버스 정거장으로 향해 갔습니다. 버스 정거장은 꽤나 높았고 개찰구가 정거장 내부로 가는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아마 무임승차를 방지하기 위해서 설계한 버스 시스템으로 추정됩니다. 다행이 버스 정류장에는 매표원이 있어 버스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그리고 시내 중심으로 가려면 어디에서 내려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제가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알려주더라도 매표원은 모를게 뻔하고, 시내에 돌아가기만 하더라도 큰 걱정은 덜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표원의 도움을 받은 저는 개찰구를 지나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버스가 정거장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는데, 정거장 자체가 높이가 있어 버스의 문도 높게 있습니다. 버스는 한국에 있는 (저상 버스가 아닌) 일반 버스와 다를바가 없지만, 단지 버스를 승차하거나 하차할 때 오르내리는 계단이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즉, 버스에 승차하려면 높이 위치한 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런 버스를 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버스 문의 높이와 동일한 높이의 정류장에서 탑승하는 겁니다. 이런 방법으로 무임승차를 방지한다는 아이디어가 매우 참신해 보이지만, 한국은 이미 NFC 단말기가 보편화되어 있고 한국의 기반 시설과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이 듭니다. 매표원의 도움으로 어디에서 내려야 할 지 확인한 저는 버스에 탑승하였습니다. 버스는 욕야카르타 시내에 도착하였고, 저는 근처에 오토바이를 잡아 게스트하우스까지 무사히 도착하였습니다.
이번 저녁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2층 옥상에 자리잡아 욕야카르타 밤의 골목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욕야카르타라고 해서 밤의 골목이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주황색 전등으로 가로등이 외로이 어둡고 좁은 아스팔트 길을 비추는 것은 한국의 시골 골목길을 연상케 하였습니다.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코로나 병맥주로 분위기를 즐긴 것은 확실히 기억이 납니다.

2014년 12월 1일, 월요일

월요일 아침, 오전은 없지만 오후 수업을 위해 싱가포르로 돌아가야 합니다. 게스트하우스 호스트는 공항으로 돌아갈 택시를 미리 준비시켜 주었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체크아웃을 하면서 호스트에게 고맙다고 인사하였습니다. 덕분에 저는 아디수십토 국제공항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도착하였습니다. 도착하자 제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노란 기둥의 버스 정류장이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을 보니 첫 날 인도네시아에 도착하였을 때 택시 기사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버스 정류장이 바로 옆에 있는데 버스가 공항으로 다니지 않다니, 저 스스로가 너무 순진했다는 게 느껴졌고 앞으로는 여행객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어느 사람이든 조심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곧 다가올 2014년 동남아 여행에 있어서는 사전 조사를 더욱 철저히 하고 이러한 사기를 당하지 않아야겠다는 반성을 하며, 에어아시아 비행기를 타고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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